기계의 시간(박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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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의 시간

           박승민(1964~ )

   들개들이 내장을 파기 시작했다. 오직 파기 위해서 조여놓은 다리와 입이었다. 앞발을 들어올릴 때마다 붉은 부속물들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필요 없는 살덩어리들은 뒷발에 차여 도로 밑으로 사라졌다. 들개들은 시방서의 냄새를 따라 움직였다. 목줄을 따고 꼬리뼈를 끊고, 횡경막을 부러뜨렸다. 해체 작업의 핵심은 시간과의 싸움. 필요한 부속물의 온전한 보존이었다. 쇄골을 밟고 넘어와 하행결장과 상행결장까지 끊어놓기가 힘든 구간이었다. 이리저리 얽힌 힘줄들이 뿌리처럼 매달렸다. 칡뿌리가 걸어놓은 올무에 바퀴가 반나절 갇혀 있기도 했다. 꼬리뼈까지 끊어놓고 주저앉은 산의 늑골에 올라타서 피투성이가 된 자기 몸을 이리저리 핥는다. 작업 개시와 동시에 불필요한 뼈다귀와 살점들을 다시 차도 쪽으로 던진다. 난데없이 굴러온 해골의 행렬에 놀란 승용차가 논바닥으로 주저앉을 뻔하다 도로 위로올라와 매연을 쌍욕처럼 부릉거리며 지나갔다. 파헤쳐진 내장 속으로 참나무살과 가문비살, 참꽃살과 소나무살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일주일 만에 산 하나를 먹어치운 들개들이 피 묻은 다리를 절룩거리며 옆 산으로 이동해갔다.

 

-시집, 끝은 끝으로 이어진(창비/2020)에 수록

 

 

기계의 시간은 생명이 생명을 돌보지 않는 시간이다. 참나무살과 가문비살, 참꽃살과 소나무살이 사라지는 시간이며 그 시공을 함께하고 있는 인간도 결국 사라지는 일이다. 시인은 기계의 시간을 통해 개발에 대한 의미와 잘 산다는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 김연진 / 이육사문학관 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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