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문을 녹이는(김연필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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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푸르러서 더는 말할 수 없는 꽃잎을 휘날린다

 

  불현듯 나타나는 불꽃의 언어는 김연필 시인의 시가 생동하는 하나의 방향이다. 시의 언어는 불꽃으로 발생한다. 점등의 언어가 그의 언어이다. 출처를 알 수 없이 새로 만들어지고 계속 움직이는 언어다. 그의 시는 제품으로서의 언어가 다시 질료화되는 작업장이고, 질료로서의 언어가 물성을 보존하는 정밀한 환경이면서, 무엇보다 물성의 불꽃이 터지는 현장인 것이다. 또한 현장에서 일어나는 언어의 불꽃을 살려 내는 영상이며, 불꽃이 스러져 가는 최후의 순간을 목도하는 동반이다. 따라서 그의 불꽃은 찬란하면서도 서늘해서, 습기를 머금은 불꽃에 가깝다. 창힐이 쓰는 천 편의 현대시는 이 촉촉한 무수한 불꽃을 일으키며 불꽃으로 날아다닌다. 불꽃은 눈앞에서 짧게 타오르면서도 아주 멀리,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까지 흘러가 버린다. 짐작건대 불꽃에서 불꽃으로 옮겨 다니는 창힐의 혼돈은 시에서 시로 도달하기의 까마득한 여정임에 틀림없다.

  녹는 언어, 두드려 펴는 언어, 불꽃의 언어로서의 김연필의 시는 언어의 지시성이 거의 예외적으로, 극도로 취소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 문학사의 다양한 언어파적 시도에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춘수나 오규원, 이승훈에서처럼 그의 언어는 언어의 틈으로, 의미로, 실재로 흘러들어 가지 않는다. 그리고 이 앞 세대 시인들의 선구적 모험을 좀 더 언어 쪽으로 이동시키는 것으로 현대시의 방향을 계승하고 있다. 그의 시는 언어의 외연에 있다. 아니 그의 언어가 외연이다. 언어의 접촉, 용해, 반복, 변주, 발생은 깊이를 작동시키지 않으며, 언어의 이동과 도약은 단지 언어를 향한 것이다. 언어들은 언어로 녹아들며 늘어나며 미끄러지며 튕겨 나간다. 언어가 대상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만나고 있을 따름이다. 이것이 그의 질료적 시 쓰기의 매력이다. 무엇보다 언어를 의미와 표현의 첨병으로 우대하기보다 이렇게 물질 상태의 미결정성으로 지속적으로 되돌림으로써 언어 해방이라는 불가능한 가능성을 우리 앞에 새삼 열어 보이는 것이다. (- 이수명 시인의 해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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