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과 학교, 두 공간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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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Daum 영화, 날아라 허동구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2017#photoId=99179 *


:: 전체 줄거리 요약 ::

 

  IQ 60의 학급 물 반장 동구는 매일 친구들 물 따라주는 일을 하며 웃음을 잃지 않는다. 매일 물 당번들보다 빨리 뛰어 1등으로 물을 받는 동구지만 이런 고마움을 모르는지 친구들은 어눌한 동구에게 냉담하기만 하다. 특히 동구의 짝이 된 준태는 자꾸만 자기에게 다가오는 동구를 불편해하며, 주전자에 개구리를 몰래 넣어 동구를 골탕먹인다. 개구리 사건 이후 전학 얘기까지 나오는 통에 동구 아빠는 심란해지기만 하고, 무사히 학교만 졸업해달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무릎 꿇음에도 학부모들과 교직원들은 동구를 특수학교로 전학을 보내려한다.

 

  어느 날, 일찍 온 동구는 이상함을 느끼게 되는데, 바로 물주전자가 있어야 할 곳에 정수기가 생긴 것이다. 더 이상 물 반장이 필요가 없어진 교실이 혼란스러운지 동구는 애꿎은 정수기에 화풀이를 한다. 그렇게 시무룩해진 동구의 눈에 주전자를 들고 가는 야구부원을 보게 되고 동구는 재빨리 뛰어나가 야구부원을 쫒아가게 되고 야구부원이 부족해져 곤란해진 권 코치는 동구를 야구부원(물반장)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야구의 룰울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꾸 눈을 감으며 헛스윙만 하는 동구를 보며 권코치는 근심에 빠지게 된다. 이런 권고치의 근심과 달리 동구 아버지는 동구가 야구부에 있으면 특수학교로 전학을 보낼 수 없음을 알고 동구가 계속 야구부에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체육평가시간, 한 바퀴를 뛰었음에도 멈추지 않고 두 바퀴를 뛰어서야 멈춘 동구를 선생님은 나무라지만 동구는, 심장이 아파 뛰지 못한 준태 몫까지 뛰었다고 대꾸한다. 늘 동구에게 날을 세우던 준태도 이 때 동구의 순수한 마음을 깨닫게 된다. 준태와 동구는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는데 준태는 하굣길에서 권코치에게 꾸지람 받는 동구를 보게 된다. 결국 준태는 동구에게 야구 규칙을 가르치겠다고 선언하고, 동구는 기본적인 규칙과 미숙하게나마 공에 방망이를 대는 것을 익히게 된다.

 

  드디어 대망의 경기 날. 어김없이 헛스윙을 하는 동구를 구멍이라고 생각한 상대 팀은 동구를 아웃시키고 경기를 끝내려 한다. 그렇게 동구의 차례가 되고 특훈의 결과가 나타난 것일까, 드디어 날아오는 공에 방망이를 가져다 댄 동구는 성공적으로 1루를 밟고 경기를 승리로 이끈다.


:: 야구장과 학교, 두 공간의 온도 ::

 

# 사회의 축소한, 학교

 

  우리는 학교를 작은 사회라고 말한다. 3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에서 1년 학급을 운영하기 위해 각자 역할을 분담하여 제 몫을 해나간다. 크게 반장, 부반장에서 우유당번까지 학급에서 필요한 역할들은 다양하다. 그리고 영화에서 동구는 물 담당이 되어 교실에 놓여진 물 주전자를 채우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동구를 보는 친구들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제 몫을 해내기 위해 남들보다 빠르게 뛰며 또래 아이들보다 더 빠르게 뛰는 동구의 노력은 평가받지 못한다. 더군다나 동구의 주변에 서 있으면 놀림감 되기 일쑤다. 보통이라는 집합에 속하지 못한 것 하나로 동구는 기피대상이 된다. 학급 안에서는 동구는 바보고, 모자라고, 학급 반 평균을 깎아먹는 아이로 낙인찍히지만 담임선생을 비롯한 그 누구도 그런 불합리함을 지적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보이는 이런 편견 가득한 시선에 담긴 불합리함은 단순히 아이들이 철이 모습을 반영했다고 치부하기는 힘들다. 아이들의 철없는 행동이라고 보기보다는 오히려 아이들이 사회를 더 유심히 보고 학습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동네 집값이 떨어진다’, ‘치안이 불안해진다는 속설이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교육 평등 기회가 흔들리는 현실인데, 아이들에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요구한다면 그것도 참 우스운 광경일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필자 역시 만약 저 무리들에 있다면 동구를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방관하고 있는 나도 결국은 가해자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아마 감독은 제 역할을 충분히 내내는 특수 아동과 우리 사이에는 간극이 없으며, 보통이라는 잣대로 그들의 가능성을 애초에 폄하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간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방관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동참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영화에서 준태는 동구에게 쏟아지는 편견을 방관했지만, 동구와 우정을 쌓게 된 이후부터는 적극적으로 반 아이들로부터 동구를 변호하는 한편 야구의 규칙을 알려주는 등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 말미에 동구는 드디어 첫 안타를 때리게 되는데 이는 영화의 갈등 해소를 위한 영화적 장치겠지만, 감독은 준태의 의식 성장을 통해서 우리에게 변화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한편 독려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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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키움, 희생번트가 많아졌다..‘스몰 야구로 전환”, 강주형 기자, 한국일보, 2020.08.14 **


 

  야구는 스포츠다. 그리고 참여하는 모든 야구 선수들은 규칙을 따른다. 그 규칙 아래에서는 체격이 크고 작고, 누가 더 빠르고 느리고를 떠나서 모두 동등하게 적용된다. 물론 심판들의 성향에 따라 스트라이크존의 크기는 조금 차이가 있겠지만 모든 선수에게 3S 4B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리고 우스갯소리지만 잘생겼다고 볼을 잡아주지 않고 못생겼다고 스트라이크를 잡아주지 않는다. 키가 크든 작든 베이스를 밟지 않으면 아웃이 된다. 똑똑하다고 해서 점수를 더 올려주지 않는다. 출전하는 선수들은 모두 베이스를 밟고 1점을 얻겠다는 공통된 목표를 향해 모두 힘을 합친다. 그 사이에 인종, 피부색, 장애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날아라 허동구를 보며 필자는 감독이 왜 야구 이야기를 넣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 의아함은 영화 말미에 가서야 해소되었다. 감독이 야구 이야기를 넣은 이유는 단순히 물 반장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더욱이 동구 가족의 불행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도 아니다. 감독은 야구라는 스포츠를 도입해서 학교와 대비되는 이상적인 공간을 제시하고 있다. 규칙 안에서는 모두가 동등하게 평가받고 동등한 자격이 주어진다. 인종, 피부색, 장애 여부를 떠나 모두가 평등한 기회와 이익을 얻는 공간이 야구 경기장이다.

 

  동구의 첫 경기 시합에서 동구는 비록 헛스윙으로 삼진을 당하지만 그 사이에서 어떠한 편견으로 인한 차별을 받지 않는다. 남들과 똑같이 세 번 헛스윙을 하고 아웃된다. 그리고 마지막 승부처에서 동구는 제 몫을 해내어 안타를 치고 팀의 승리에 기여하게 된다. 동구의 안타에 대해 비난 하는 사람 없이, 아무런 편견 없이 동구가 베이스를 뛰는 순간에는 모두가 한 팀이고 모두가 같은 승리의 기쁨을 나눈다. 승리하는 순간, 동구는 한 팀의 자랑스러운 멤버이자 MVP가 된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 규칙대로 모두가 오로지 일률적으로 동등하게 평가받는 세상은 오히려 장애인들에게 잔인한 세상이 아닐까 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역차별이라는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무시할 수 없다. 장애 아동들의 어쩔 수 없는 신체적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발상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의견에 공감한다. 하지만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제 몫을 다 했을 때 똑같은 시선을 받는가에 대한 것이다. 제 몫을 다한 사람에게는 동정의 시선이 아니라 고생했다, 수고했다는 고마움의 시선이 필요하다.

 

  결국 영화에서 학교 교실과 야구 경기장의 온도는 서로 다르게 제시된다. 교실에서 동구는 물 반장으로서의 역할을 다 했지만 따라오는 건 조롱이였다. 그리고 반평균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동구에게 시험을 보지 않게 하는 담임선생이 있다. 동구는 학생으로서의 권리를 온전히 누리고 있지 않다. 제 몫을 다 해낸 사회구성원에게는 당연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지만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동구는 오히려 소외될 뿐이다.

 

  하지만 야구 경기장에서 동구는 한 명의 선수로 평가받으면서 동구가 가져온 승리에 모두가 기뻐한다. 그 기쁨에는 어떠한 편견도 조롱도 없었다. 야구 경기장에서의 동구는 그 어떤 사견이 없이 동등한 규칙 아래에서 인정받고 있었다. 영화 말미에 동구가 제 역할을 다했을 때 팀은 동구를 치켜세웠고, 베이스를 무사히 밟았을 때 심판은 동구의 신체적 장애를 떠나서 공정하게 SAFE를 선언했다. 그 안에는 더 이상의 바보 허동구, 물 반장 허동구는 없었고 인간 허동구가 있었다.

 

  우스갯소리지만 날아라 허동구의 영어 제목은 Bunt이다. 스윙을 하지 못해 안타를 만들 수 없다고 무시당했던 동구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안타를 만드는 장면을 보며 편견어린 시선은 사람을 상처입힐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잠재적 가능성까지 짓밟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 권근영 / 외부청년편집위원


* 출처 : Daum 영화, 날아라 허동구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2017#photoId=99179 

​** 출처 : “키움, 희생번트가 많아졌다..‘스몰 야구로 전환”, 강주형 기자, 한국일보, 2020.08.14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22-04-05 10:53:46 청춘 에세이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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