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 까치구멍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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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 까치구멍집

           안상학(1962~ )

 

  내가 한 일은 다만

  1948년 그 사내가 안동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

 

  제주 도민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린 지휘관을 암살한,

  국군이 국민에게 결코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던

  대한민국 제1호 사형수 문상길 중위

  고향이 어디인지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향년 스물셋 사내, 고향은 안동

 

  내가 한 일은 다만 그 사내의 내력을 찾아낸 것

 

  임하댐 수몰된 안동 마령리 이식골

  남평 문씨 종갓집 막내아들, 그 사내가 살던 곳

  그 사내가 떠난 곳,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곳

  사내처럼 사라진 마을, 흉흉한 소문 떠도는

  쉬쉬대며 살아온 일가붙이들 산기슭에 남은 곳

   

  내가 한 일은 다만 그 사내의 사진 몇 장 찾은 것

  소년처럼 해맑은 사내의 마지막 웃음

  두 손 철사로 묶인 채 나무 기둥에 결박당한 몸

  가슴에는 휘장 대신 표적, 흑백사진 붉은 피는

  두 눈 가린 채 목이 꺾인 사내의 최후 진술;

  내 비록 미군정 인간의 법정에서는 사형을 받고 사라지나

  공평한 하늘나라 법정에 먼저 가서 기다릴 것이다

 

  내가 한 일은 다만 그 사내가 살던 집을 찾아낸 것

  당당하게 살아남은 그 사내의 흔적

  300년 문화재 기와 까치구멍집 건재한 사내의 생가

  수몰을 피해 남후면 검암리로 옮겨 앉은 남평 문씨 종가

  그를 기다린 40년 고향을 뒤로하고

  1988년 옮겨 앉은 낯선 땅 32, 기다리고 기다린

  72년 만에야 불귀 주인 소식 전해들은 까치구멍집

 

  무자년 사내가 가고 72년 만에 내가 한 일은 다만

그의 흔적을 찾은 것일 뿐, 고작 대문간에 막걸리 한

잔 올리고 그의 죽음을 전하는 일이었을 뿐, 그사이

하늘나라 법정에서 받아놓았을 그 사내의 판결문을

이 집 우체통에 전해주는 일은 그날 이후 남겨진 모든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음복주를 마셨다. 경자

년 경칩 무렵, 복수초가 까치구멍집 화단에 피어 있는

날이었다.

 

  - 시집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걷는사람 시인선 27)에 수록

 

   한편의 시가 경건이 될 때가 있다. 남겨진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고 스물셋 그 사내의 속을 슬픔을 마주해야 한다. 이것이 남겨진 우리들의 몫이다. 끝나지 않은 슬픔위에 따뜻한 손을 얹어 준 시인의 마음을 나는 다만 적는다.


■ 김연진 / 이육사문학관 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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