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 까치구멍집
작성자 정보
- 작성일
- 조회 122
- 작성자 관리자
컨텐츠 정보
본문
기와 까치구멍집
안상학(1962~ )
내가 한 일은 다만 1948년 그 사내가 안동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
제주 도민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린 지휘관을 암살한, 국군이 국민에게 결코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던 대한민국 제1호 사형수 문상길 중위 고향이 어디인지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향년 스물셋 사내, 고향은 안동
내가 한 일은 다만 그 사내의 내력을 찾아낸 것
임하댐 수몰된 안동 마령리 이식골 남평 문씨 종갓집 막내아들, 그 사내가 살던 곳 그 사내가 떠난 곳,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곳 사내처럼 사라진 마을, 흉흉한 소문 떠도는 쉬쉬대며 살아온 일가붙이들 산기슭에 남은 곳
내가 한 일은 다만 그 사내의 사진 몇 장 찾은 것 소년처럼 해맑은 사내의 마지막 웃음 두 손 철사로 묶인 채 나무 기둥에 결박당한 몸 가슴에는 휘장 대신 표적, 흑백사진 붉은 피는 두 눈 가린 채 목이 꺾인 사내의 최후 진술; 내 비록 미군정 인간의 법정에서는 사형을 받고 사라지나 공평한 하늘나라 법정에 먼저 가서 기다릴 것이다
내가 한 일은 다만 그 사내가 살던 집을 찾아낸 것 당당하게 살아남은 그 사내의 흔적 300년 문화재 기와 까치구멍집 건재한 사내의 생가 수몰을 피해 남후면 검암리로 옮겨 앉은 남평 문씨 종가 그를 기다린 40년 고향을 뒤로하고 1988년 옮겨 앉은 낯선 땅 32년, 기다리고 기다린 72년 만에야 불귀 주인 소식 전해들은 까치구멍집
무자년 사내가 가고 72년 만에 내가 한 일은 다만 그의 흔적을 찾은 것일 뿐, 고작 대문간에 막걸리 한 잔 올리고 그의 죽음을 전하는 일이었을 뿐, 그사이 하늘나라 법정에서 받아놓았을 그 사내의 판결문을 이 집 우체통에 전해주는 일은 그날 이후 남겨진 모든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음복주를 마셨다. 경자 년 경칩 무렵, 복수초가 까치구멍집 화단에 피어 있는 날이었다. |
- 시집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걷는사람 시인선 27)』에 수록
한편의 시가 경건이 될 때가 있다. 남겨진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고 스물셋 그 사내의 속을 슬픔을 마주해야 한다. 이것이 남겨진 우리들의 몫이다. 끝나지 않은 슬픔위에 따뜻한 손을 얹어 준 시인의 마음을 나는 다만 적는다.
■ 김연진 / 이육사문학관 해설사
관련자료
-
다음글작성일 2021.11.30
-
이전글작성일 2021.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