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형제가 의성김씨 해저만회고택 김홍기에게 보낸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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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 서신(엽서)

규격 : 9cm×14cm

날짜 : 1941

소장 경위 : 기증, 김시원(의성김씨 해저 만회고택)

 

원문

보내는 사람 京城府 鐘岩町 六二 李源祺

받는 사람 慶北 奉化郡 乃城面 海底 金鴻基 氏

 

源祺等稽顙白

源祺等罪不自滅禍延先考

孤寄酷罰無望生全

伏蒙尊慈特賜俯恤

哀感之至罔任下誠

末由面訴益增惶隕

謹奉疏荒迷不次答疏上

辛巳 月 日

孤子 源祺

活 源一 源朝 源昌等 再拜疏上


현대어

  보내는 사람 경성부 종암정 62 이원기

  받는 사람 경북 봉화군 내성면 해저 김홍기 씨

 

  원기 등은 계상(이마를 바닥에 대다. 상을 입은 사람이 조의를 표한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며 서두에 쓰는 말)하고 아룁니다.

  원기 등의 죄 때문에 선고(아버지 이가호)에게 화가 미치었습니다.

  외로이 혹독한 벌에 처해져 온전히 살아가길 바랄 수 없습니다.

  자애로운 귀하께서 특별히 굽어 살펴 주셔서

  슬픔과 감사의 지극함을 아랫사람의 정성으로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얼굴을 뵙고서 아뢸 길이 없어 더욱 황공하고 죽을 것 같은 마음이 더합니다.

  삼가 위문편지에 대한 답을 받들매 어지럽고 혼미함에 차례를 차리지 못하고 답장을 올립니다.

  신사(1941) 월 일

  고자(아버지를 잃은 자식) 원기 활 원일 원조 원창 등 다시 절하며 답 편지 올립니다.

 

  * 번역 김승균

 

  당시 이육사의 상황

  1941년은 이육사가 육친을 얻은 해이자 잃은 해이기도 하다. 327(음력 230) 서울시 명륜동 3정목 57번지의 3에서 딸 옥비(沃非)얻었고, 521(음력 426)에는 서울시 종암동 62번지에서 부친(李家鎬)을 잃었다. 이 엽서는 부친의 상례에 위문편지를 보내온 경북 봉화 해저의 의성김씨 만회고택 김홍기(金鴻基, 1884~1954, 건국공로 애족장 추서) 앞으로 보낸 답례 엽서이다. 해저의 만회고택과 이육사 집안의 교류는 깊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찍 세상을 떠난 원홍을 제외한 다섯 형제의 이름이 나란히 올라있다. 봄에 부친의 장례를 치르고 여름 즈음에 이육사는 폐질환으로 경주 신인사에 머물며 요양을 하게 된다. 병세가 악화 되어 겨울에는 명동의 성모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이때 각별히 지내던 영양 출신 이병각(李秉珏) 시인도 함께 입원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병각 시인은 그 해 겨울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만다. 이육사에게 이 해는 어느 해보다 큰 기쁨과 큰 슬픔이 교차하는 해였다. 신산한 가운데도 연인기, 독백, 아미, 자야곡, 서울, 중국문학 50년사, 농촌문화문제특집 설문에 대한 답, 연륜, 골목안, 중국현대시의 일단면, 산사기, 파초등 여러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 신준영 / 이육사문학관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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