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골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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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이란 단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말들이 숨어있지만 필자는 추억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골목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마 얼기설기 엉킨 집들 사이로 난 좁은 골목에서 추억을 만들었고, 그 골목을 걸어 유년을 통과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골목에 대한 추억은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이기에 아쉬움을 동반하고, 계속 흘러가는 시간이기에 사라지고 쇠퇴한다. 우연히 옛 모습을 잃어버린 골목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이질감, 그리고 함께 동반되는 슬픔은 또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할까? 이제는 담벼락에 써져 있던 낙서도 없고, 친구들과 함께 술래를 피해 몸을 숨기던 개구멍도 없고, 딱지치기를 하던 머리 위로,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를 누비던 머리위로 비스듬히 비쳐오는 햇살도 없다.

   어쩌면 골목은 살아있는 생명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골목은 오늘도 태어나고 쇠퇴하고 소멸한다. 태어나는 골목이야 또 누군가가 추억을 만들며 번성해갈 테지만 쇠퇴하고 곧 소멸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골목은 여간 아쉬운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한때는 번화했지만 지금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골목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필자는 이 골목에서 20대의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이 거리에는 아직 20대의 치기어린 젊음이 있다. 그리고 풋풋했던 사랑이 있고, 여전히 오늘 하루의 피곤함을 위로하는 낭만이 있다.)

   이 골목을 생각하면 항상 아이러니 한 것이 하나 있다. 이 골목의 바로 맞은 편, 혹은 바로 위 골목, 불과 2분여 거리의 차이를 둔 두 골목이 맞이한 운명 때문인데, 두 골목 다 옛날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지만 그 달라진 양상이 너무나 다르다. 위 골목은 어느 순간 몸집을 키우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전국에서도 유명한 골목이 되어 버렸고, 한 골목은 몸집이 점점 왜소해지더니 이제는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쯤 되면 말하고 싶은 추억의 골목이 어디인지 눈치를 챈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 골목에 들어서면 정다운 간판들이 먼저 눈에 띈다. 좁은 골목에는 노란색, 하얀색, 빨간색, 초록색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 사람들을 반긴다. 한때는 이런 간판이 더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지금은 골목의 초입에만 몇 개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추억을 간직한 사람으로서 아쉬움이 남는다. 네온사인의 휘황찬란함에 이끌려 골목으로 들어서면 식욕을 당기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빨간 숯불 위에서 동그랗게 몸을 말고 서서히 익어가는 저녁노을과도 같은 막창 냄새, 그렇다 이곳은 일명 막창골목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지금도 길 양옆으로 막창을 주 메뉴로 하는 가게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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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적인 맛의 찜닭과는 달리 막창은 확실히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다. 그 주된 이유는 아마 막창에서 풍겨오는 독특한 향 때문일 텐데, 막창의 쫄깃한 식감과 그 풍미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 독특한 향에 더 매료될 것이다.(필자 역시 막창을 처음 접했을 때는 구리구리 풍겨오는 냄새 때문에 잘 먹지 못했다. 이 골목을 처음 접했을 때는 막창보다 갈매기살에 매료되었었다. 하지만 막창을 계속 접하면서 서서히 그 맛에 매료되어 갔는데 그 후부터는 시시때때로 그 맛이 그리워 이 골목을 찾게 되었다.)

   막창에 대해 잘 아는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냄새를 깔끔하게 잡아내는 집이 진정한 막창의 대가라고. 하지만 진정으로 막창을 즐기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이 독특한 냄새가 오히려 막창의 매력이라고. 이 독특한 냄새를 잡기 위한 각 가게의 독특한 비법이 가게마다 막창의 맛을 다르게 만들어준다. 그렇기에 막창의 맛은 막창 가게의 숫자만큼 존재하며, 이 골목을 아무리 찾아와도 새로운 맛을 즐길 수 있기에 질리지 않게 해준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곳 토박이들은 골목 안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단골집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곳을 처음 찾는 사람이라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문을 열고 들어가 그 맛을 음미해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맛을 기억해 두었다가 다른 가게와 비교해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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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갛게 달아오른 숯불 위에서 노란 몸을 말고 노릇하게 익어가는 막창 한 점을 소스(이 소스 역시 막창의 맛을 좌우하는데, 이 맛 역시 가게마다 조금씩 다르며, 파와 청량고추를 마음대로 조절하며 내 입맛에 맞는 소스를 만들 수도 있다.)에 찍어 먹으며 그 향기에 취해 하루를 달래본다면 낮 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한 번에 날아갈 것이다. 물론 숯불 앞에서 발갛게 달아올라 조금은 미지근해진 한 잔의 소주를 곁들인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막창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이 추억의 골목이 서서히 사라지고 쇠퇴하고 있어 너무나 아쉽다. 물론 이 골목이 이렇게 쇠약해 진 이유에는 현재 20대의 입맛을 쫓아가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맛을 전해주지 못한 우리에게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 지금 당장 이 골목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옛 추억을 떠올리며 가족의 손을 잡고 이 골목을 찾아가보자. 그리고 이 골목의 매력을 후대에 전해주자. 그리고 다시 그 옛날 새벽녘까지 왁자지껄했던 그 골목으로 번성하길 바라보자.


■ 김균탁 / 이육사문학관 학예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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