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고양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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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은 고양이로다(『상화와 고월』, 청구출판사, 재판, 1954)

 

봄은 고양이로다

 

이 장 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香氣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밋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폭은한 봄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生氣생기가 뛰놀아라


봄은 고양이로다는 고월 이장희古月 李章熙(1900-1929)가 동인지 『금성金星3(1924)에 발표한, 실바람 지나간 뒤, 새 한 마리등 다섯 편의 시작품 중 하나이다. 이 때 고월은 톨스토이 원작의 번역소설 장구한 귀양도 함께 실었다. 『금성』1923년 창간 후 통권 3호로 종간한, 시 중심의 동인지였다. 『창조』(1919), 『폐허』(1920), 『백조』(1922)에 이어, 『금성』은, 동인지 발간을 통해 자신들의 문학적 관심과 창작의 열의를 집약하고 발표했던, 우리 근대문학 초창기 문학저널리즘의 한 형태였다. 동인은 양주동, 손진태, 유엽, 백기만, 이상백, 이장희 등이다.

   「봄은 고양이로다에서 고양이의 결합은 느닷없고 놀랍다. ‘봄은 고양이로다의 은유는 통사론적으로 규범적이지만, 의미론상(축어적으로는) 문법의 일탈이다. 무생물의 과 생물인 고양이가 같은 것으로 연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에서 이러한 일탈은 오히려 의도적이다. 왜 시인은 봄은 꽃피는 계절이다.’와 같이 규범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인 이해에 합치되는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봄은 고양이로다와 같이 문법의 규범에서 의도적으로 일탈하는가.

   이에 대한 답변으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낯설게 만들기defamiliarization”라는 용어를 내놓는다. 그들에 따르면, ‘낯설게 만들기란 친숙한 사물에 대한 우리의 자동화된 이해를 파괴하는 한 방법이자, 예술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이다. 사실 우리의 지각은 어떤 사물과 사태에 친숙해지면서 자동화되고, 자동화된 지각은 사물과 사태에 대한 관습적이고 상투적인 이해에 그치거나 습관적인 행동을 촉발시킬 뿐이다. 이러한 감각의 자동화는 사물에 대한 생생하고 구체적인 지각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우리의 이해를 도식화하고 상투화한다.

   따라서 예술은 낯선 것을 친숙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친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고, 쉽게 지각되는 것을 어렵고도 천천히지각하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술의 목적은 대상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의도적으로 최대한 ‘연장’하는 것이다. 낯설게 제시된 사태와 사물 앞에서 우리의 감각은 예민하고 기민해진다. 그런 까닭에 예술로서의 시는 친숙하고 자명한 사물에 대한 틀에 박힌 지각을 거부하면서, 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만든다.

   「봄은 고양이로다을 상투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고양이, , 입술, 수염이라는 선택적 부분들과 대비하고 결합해, 새로운 감각으로 을 제시한다. 이 유추와 결합은 놀랍고 참신하다. 그것은 고양이에 대한 독자의 감각을 예민하게 작동하도록 이끌고, 마침내 고양이와 대비되고 결합되어 드러나는 의 정서와 상태를 새롭게 인식하고 느끼게 하는, ‘예술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때 고양이는 우리에게 일상적으로 보여진 것이 아니라, 개성적인 감각에 의해 시인이 본 것이자, 시인이 파악한 있는 그대로, 혹은 우리가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새로운세계이다. 그런 뜻에서 시인詩人, ‘랭보Arthur Rimbaud 의 말처럼, ‘보는 자voyant’, 視人시인이다. 그리하여 어느 시인(공초 오상순空超 吳相淳)의 말과 같이, “봄은 한 마리 고양이 속에 완전히 살았고 고양이는 봄 속에 그 생을 審美的심미적으로 最高度최고도로 빈틈없이 完全완전發揮발휘하고 完成완성했다.”


 

군말

   고월 이장희의 개성과 감각의 예민성은 주목할 만하지만, 일반 독자에게 그와 그의 시 40여 편은 거의 잊혀졌다. 고월의 사후 이십여 년이 지나, 『금성』 동인이자 고월의 동향(대구) 출신의 문우였던, 목우 백기만牧牛 白基萬이 펴낸상화와 고월尙和 古月』(청구출판사, 1951)에 고월의 시 11편이 실렸다. 이후 그의 시를 찾아 보태고 살피는 노력이 이어졌으나, 여전히 그와 그의 시는 주목을 받는다고 할 수 없다.

   고월은, “는 푸라치나이라야 한다. 光彩광채 없고 彈力性탄력성 없고 刺戟性자극성 없고 굵다란 鐵絲線철사선가 아니다.”라고 했다. ‘푸라치나백금platina, platinum을 뜻한다. 언어와 감정의 절제, 그리고 감각의 예민함에서, 고월의 시는 당대 감정과잉의 감상적 낭만주의시들과 단연 구별된다. 기질에 따른 것이든, 학습에 의한 것이든, 고월의 시는 이후 정지용이 보여준 감정의 절제, 그리고 사물과 세계에 대한 탁월한 감각적 재현을 그에 앞서 보여준 거의 유일한 시인이다.

   고월은 자살로 스물 아홉의 삶을 마감했다. 그의 아버지는 대구의 부호였지만, 일제 강점기 중추원 참의를 지냈을 정도로 친체제적인 인물이었다. 고월은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부친과는 심각한 갈등 속에서 지냈다. 구름을 어머니의 젖가슴으로 감각적인 번역’을 한 것도 어머니 없이 자란 유년기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어머니 어머니라고/ 어린 마음으로 가만히 부르고 싶은/ 푸른 하늘에/ 따스한 봄이 흐르고/ 또 흰 볕을 놓으며/ 불룩한 乳房유방이 달려 있어/ 이슬맺힌 포도송이보다 더 아름다워라’(靑天청천乳房유방일부). 평소에 사람들을 속물이라 피하고, 자신의 부친과도 거의 의절한 상태로 지내면서, 나름대로 자신의 순결성을 지키려고 애쓰던 시인이 이십대 젊디젊은 나이에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새삼 슬프고 안타깝다!

손병희 / 이육사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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