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시인 추모의 밤을 마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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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시인 추모의 밤을 마친 뒤, 이에 격려 고무된 정호경 신부는 안동 지역 지식인들의 소박한 모임을 만들고 독서회 형태로 꾸려가기를 제의했다. 나는 여기에 적극 찬동했다. 이 조직에 참가하는 멤버들을 선정하는데, 일단 아동문학가 이오덕, 봉화의 농민 전우익, 안동 일직의 아동문학가 권정생, 울진 죽변 감리교회 이현주 목사, 그분은 아동문학과 수필을 겸하셨다. 안동대학의 한국사 전공 조동걸 교수, 조 교수는 "한국농민운동사연구"란 책으로 대학생들 사이에 명성이 높았다. 안동가톨릭농민회 권종대 회장, 마리스타 수도회의 김 수사, 또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몇몇 분들이 이 모임에 속속 참가했다.

 

  처음엔 "세계철학사"를 읽고 토론했다. 두 번째는 중국의 근대 작가 루쉰의 소설과 문학세계를 깊이 있게 토론했다. 세 번째는 리영희 선생의 "우상과 이성"이었다. 전우익 선생은 루쉰을 비롯한 중국의 진보적 작가들 작품에 관심이 많았다. 봉화 댁에 갔더니 책이 많았다. 그분은 평소 헐렁한 삼베잠방이에 검정고무신을 질질 끌고 그 차림으로 서울까지도 다녀오는 분이다. 듣기로는 해방 직후 서울의 대학을 다녔다고 한다. 학창시절 감옥에 자주 갇혔다고 한다. 손재주가 많아 왕골자리, 나무로 만든 가구, 농사연장 이런 것들은 직접 만들어서 쓰셨고 주변에 선물도 주시기도 했다. 나도 그분 솜씨로 만든 괴목 책상과 띠풀로 엮어 만든 초석자리, 부들자리 등 두 세 가지를 지금도 지니고 있다. 그걸 만들고 팔아서 용돈으로 쓰시기도 했다. 봉화의 상운면 구천리 골짜기 한옥 고가에서 늘 안동 시내로 나오셨다.

 

  이오덕 선생은 당시 산골국민학교 분교 교사로서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란 제목의 책을 발간하고 그것이 단숨에 화제의 책으로 떠올랐다. 주로 한국 초등교육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해적이와 비판적 글들이 많았고 산골학교 소년들의 맑은 동시를 담기도 했다.

 

  독서회 토론은 깊어지고 열띤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한국 독재정권의 모순과 부조리 이런 문제들과 저절로 연결되었다. 날이 저물어 토론은 미완성인 채 끝나고 가까운 실비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모두들 안동을 하나 둘 떠났다.

 

  첫 행사를 마친 뒤엔 문화회관 큰 방에서 함께 잤다. 권정생 선생은 늘 신장투석을 하는 분으로 옆구리에 오줌주머니를 차고 계셨다. 새벽녘 권정생 선생이 자리에 누워 통증으로 땅이 꺼지는 듯 앓는 소리를 들었다. 아무런 도움도 드리지 못한 채 날이 밝았다. 그냥 그 지극한 고통 곁에서 용만 썼을 뿐이다. 권정생 선생은 그 후 한 번 정도 나오곤 다시는 오지 못하셨는데 그 길로 병원에 장기 입원했기 때문이다. 그 모든 뒷바라지를 정호경 신부가 도맡았다. 권 선생은 어떤 긴급한 일이 있으면 언제나 정 신부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독서회는 도합 다섯 달 정도 하다가 더 이상 계속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까닭은 갈수록 참석자 수도 줄어들고 또 경찰에서 독서회 조직에 대한 조사도 있었다. 불온서적으로 토론한다는 제보가 있다며 안동경찰서에서 신부님을 호출했다고 한다. 모든 활동이 불편하던 유신시대라 일거수일투족을 까탈 잡고 감시 대상이었다.

 

  그 다음 달에는 토론을 마친 뒤 이오덕, 전우익 두 분이 돌아가는 막차가 끊겨 내 하숙에서 주무셨다. 모기장을 치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두 분은 이미 떠나고 계시지 않았다. 몹시 일찍 일어나시나 보았다.

■ 이동순(시인)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21-11-30 14:31:50 이동순 시인의 안동 이야기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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