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의 ⌜의의란도(依依蘭圖)⌟ 이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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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손짓, 지지 않는 꽃향기

 

다음은 이육사가 1940417일에 써서 신석초(申石艸, 1909~1975)에게 보낸 봉함엽서 뒷면에 적힌 추신이다.

 

  . 지금 三浪津驛에 나리니 六點鐘. 그 앞 晉州旅館에 드니 馬山七時十分에 간다기에 大金一圓六十錢洛東江 鯉魚鱠맛걸니五杯痛飮하였다. 如此風流를 서울서는 想像만 하여라. 仔細는 가서 報告함 세*

 

  열차를 갈아타기까지 한 시간 남짓의 늦은 오후 시간이다. 아직 밤이 오지 않은 짧은 저녁 시간에 벗을 멀리 두고, 홀로 취하도록 막걸리를 마시는 심정을 들여다본다. 무엇을 위해 취하는가? 봉함엽서 안쪽에 그곳에 다으면 그대의 오랜 기억 속에 잠든 가지가지의 로망을 적어 보내겟네라고 쓴 것을 보면, 이육사는 방문의 목적에 앞서 벌써부터 마음속 깊이 어떤 그리움을 달래고 있었다.

  

  그리움을 달래는 자리, 그곳에는 어떤 창의적인 결실이 맺힐 수 있다. 무언가를 꿈꾸기 때문이다. 현실 너머의 꿈자리를 마련함이 왜 필요한가? 인간의 잠재적 본성을 일깨워서 뒤흔드는 감정과 욕구, 이것은 미래 생존에 대한 갈망이요 로망이다. 내면에 감추어진 욕구, 이것을 전달하려면 상대는 내 마음을 알아주는 지음(知音)이 아니면 안 된다. 무엇이든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상대여야만 한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한 점 난초 그림을 장차 신석초에게 그려 보내게 될 소지(素地)가 여기에서 느껴진다.


  그 자리에서 들이킨 다섯 잔의 막걸리, 참으로 잘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라를 잃고 살아가는 억울한 삶의 설움을 어찌 풀고 나오겠는가? 독립투사로서, 시인으로서의 삶도 소중하지만, 인간 존재의 본원(本原)을 일상 무엇으로 확인하며 어떻게 위로할 수 있었겠는가?

  도연명(陶淵明, 365~427)음주(飮酒)에서 차중유진의 욕변이망언(此中有眞意 欲辨已妄言)”이라고 읊고 있다. 참뜻을 말하려 하다가도 그만 할 말을 잊고 마는, 이러한 시적 경계는 언어적 분별 의식을 넘어선 무아경(無我境)일 것이다. 존재의 불안과 삶의 시름을 과연 무엇으로 넘어설 수 있는가? 사람마다 방도가 다르겠으나, 도연명의 경우는 모름지기 음주가 한 방편이었던 것 같다. 두보(杜甫, 712~770) 또한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에서 하시일준주 중여세론문(何時一樽酒 重與細論文)”이라 하지 않았는가. 한 동이 술을 놓고 다시 글을 논할 날 기다리며 이백을 그리워하고 있으니, 이렇듯 음주는 시인의 교유와 정신세계의 표현에도 유용한 매개체가 되고 있음을 본다.

 

  난초를 왜 치는가? 이 또한 정신세계의 표출이다. 묵란화(墨蘭畵)는 눈앞의 실물 묘사에 치중하는 사실화가 아니라, 화가의 심상(心象) 세계를 그려내는 추상화이다. 유희삼매(遊戱三昧)의 경지에서 그리게 되니, 화가 자신이 곧 난초의 잎이 되어 흔들리고 꽃대가 되어 꽃잎을 터뜨린다. 먹빛 싱그러운 잎들이 하늘하늘 그리움의 손짓을 하는 가운데 아리땁고 연한 꽃망울은 그윽한 향기를 내뿜는다. 화가는 여기에서 정신적 희열(喜悅)을 맛본다. 세상사 어지러움을 잠시 잊을 수 있고, 이즈음 말로 힐링이 된다.

 

  추사(秋史)부작란도(不作蘭圖)에는 좌측 상단에 이런 제화시가 있다. 난초 꽃을 그리지 않은 지 20년 만에, 뜻하지 않게 깊은 마음속의 하늘을 그려 냈다. 문을 닫고 마음 깊은 곳을 찾아보니, 이것이 바로 유마힐(維摩詰)의 불이선(不二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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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정희, <부작란>, 지본수묵, 5530.6cm

부작난화이십년 (不作蘭花二十年)

우연사출성중천 (偶然寫出性中天)

폐문멱멱심심처 (閉門覓覓尋尋處)

차시유마불이선 (此是維摩不二禪)

  

   여기에서 성중천(性中天)은 곧 문인화가(文人畵家)가 거둔 득의(得意)의 경지를 자부하는 것이고, 불이선(不二禪)은 선불교적 깨달음의 경지를 말함이다. 그림의 좌측 하단에는 거침없이 붓을 놀렸다. 한번은 할 수 있겠지만 두 번은 불가능할 것이다.”***라고 적어놓아서, 아무렇게나 그린 듯해도 천성이 배어난 그림은 결코 되풀이하여 그려낼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그림의 우측에는 작은 글씨로 초예기자(草隷奇字)의 법으로 그렸으니 세상 사람이 어찌 알 수 있으며 어찌 그것을 좋아할 수 있으랴.”****라고 적어놓고 있다. 이것은 서법(書法) 중심의 사의적(寫意的) 추상화임을 자랑하는 것이다.

     

  이제 이육사의 의의란도(依依蘭圖)를 다시 살펴보자. 화제로 쓰인 의의가패(依依可佩)”가 무슨 뜻인가? ‘의의(依依)’무성하다’, ‘하늘거리다’, ‘그리워하는’, ‘애틋한정도의 뜻으로 쓰이는 것 같다.***** 무엇이 하늘거리는가? 싱싱한 잎이 바람결에 하늘하늘 흔들린다. 난초 꽃향기 그윽한 가운데, 잎은 시원하면서도 마치 저 멀리 그리운 벗이나 임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 같은 애틋함을 전해준다. 그리움의 대상과 느낌은 감상자마다 다를 수 있겠으나 그 향기는 같을 것이다. 모쪼록 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고 한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의 말씀이 떠오른다.

 가패(可佩)’는 어기(語氣)를 좀 높여서 쓰는 말로서 존경스럽다’, ‘감탄스럽다’, ‘탄복할 만하다는 뜻이라 한다. 무엇이 경탄할 만한가? 난초의 상징은 의인화된 것이다. 왕자향(王者香)이든, 국향(國香)이든, 또는 저항정신이든 간에 그것은 감상자의 마음속 그리움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주는 듯싶은 난초의 자태와 향기에는 절로 탄복할 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육사의 난초 그림은 의의란도(依依蘭圖)가 거의 유일하지 않나 싶다. 다른 그림이 더 남겨져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처럼 수준 높은 그림이 또 발견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일제강점기가 아니었더라면 시인뿐만 아니라 화가로서의 명성도 쌓을 수 있었겠고, ··화 삼절(三絶)의 예술세계를 크게 펼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한 점의 묵란도(墨蘭圖)만 가지고도 천성(天性)이 발휘된 절대성으로 인해, 추사의 부작란도(不作蘭圖)못지않은 가치를 뽐내고 있다. 이육사의 가슴속 그리움과 금강심의 표상(表象)이 바로 의의란도(依依蘭圖)일 것이다. 이 그림은 그러므로 지지 않는 꽃향기를 머금고 있다. ()

 

 

■권기윤 / 안동대학교 명예교수

 

 

 

* 손병희 편저, 이육사의 문학, 이육사문학관, 2017. 523, 524.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방필지가유일불가유이(放筆只可有一不可有二)

**** 이초예기자지법위지 세인나득지나득호지야(以草隷奇字之法爲之 世人那得知那得好之也)

***** 의의依依의 뜻을 찾아본다. ‘依依하다의 뜻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이렇게 나온다. 1풀이 무성하여 싱싱하게 푸르다. 2기억이 어렴풋하다. 3헤어지기가 서운하다. 4부드럽고 약하다. 辭源에는 依依의 뜻이 이렇게 나온다. 柔弱貌.詩小雅采薇楊柳依依. 不忍舍之貌.楚辭王逸九思傷時戀戀兮依依. 그 밖의 사전에서 1.경유피불모輕柔披拂貌 가볍고 부드럽게 흔들리는 모양 2.의연불사적양자依戀不捨的樣子 사랑스러워 버리지 못하는 모양 3.형용사모회념적심정形容思慕懷念的心情 사모하여 그리워하는 심정 등의 뜻을 찾아볼 수 있다. 도진순 지음, 강철로 된 무지개, 창비, 2017. 14~18쪽도 참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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