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누나야

작성자 정보

  • 작성일
  • 조회 610
  • 작성자 관리자

컨텐츠 정보

본문

5a7e8b49a3cea833fa909b62fffe3b62_1627699258_7671.png

엄마야 누나야(『진달래꽃』, 매문사, 1925년)


엄마야 누나야

 

김 소 월

 

엄마야 누나야 江邊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는 모래 빛,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江邊 살자.


엄마야 누나야김소월金素月(1902-1934)이 배재고보 시절 개벽開闢(19, 1922)에 발표하고, 그의 시집 진달래꽃(매문사, 1925)에 수록했다. 엄마야 누나야는 단 네 줄(), 그리고 한 줄은 모두 열 개의 음절로 구성됐다. 시를 구성하는 낱말은 엄마’, ‘누나’, ‘’, ‘모래’, ‘갈잎등과 같이 극도로 제한적인데, 인간의 원초적인 경험의 세계와 관련된다. ‘엄마는 자신의 기원이며, 자연은 삶의 터전이 아닌가.

   「엄마야 누나야에서 말하는 이(화자)가 바라고 꿈꾸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김소월의 소년이 고 싶은 공간과 그곳에서 함께 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곳은 강변이고, 그 사람은 엄마누나이다. 강변이고 왜 엄마누나인지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것은 김소월의 소년이 드러내는 정서일 따름이니. 거기에 마음이 함께 반응하면서 움직인다면, 독자는 시가 드러내는 정서에 공감하고 김소월의 소년을 함께 살게 될 것이다.

   산을 배경으로 하고 앞에는 강물이 흐르는 곳! 이른바 배산임수의 공간은 한국인에게 각인된 이상적인 집터일 터. 넓은 마당이 없어도 강변금모래이 되어 반짝이고, 집 뒤의 언덕이나 산에서는 갈잎노래한다. ‘갈잎의 노래는 시에 등장하지 않는 바람의 존재를 환기한다. 엄마와 누나야를 가득 채우는 자연, 곧 강, 모래, 갈잎, 바람은 어느 하나도 거칠거나 사납지 않다. 오로지 밝게 빛나며 부드럽고 포근하기만 하다.

   그것은 인간에게 더없이 친화적인 자연의 모습이기도 하고, ‘엄마누나로 표상되는 여성성의 세계에 다름 아니다. 엄마야 누나야의 세계는 잉태의 경험, 곧 몸이라는 구체적인 감각을 통해 타자(태아)를 자신으로 체험하는, 주체와 타자가 하나인 세계의 다른 얼굴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버지로 표상되는 남성성의 세계, 주체와 타자가 대립하는, 지배와 억압의 세계에 대한 부정일 수도 있다.

   김소월의 소년은 자연의 타자성, 자연의 폭력성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보다 때로는 더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근대 문명의 일면을 경험하고 경유한 어른 김소월이 끝내 놓치지 않으려고 한, 자연에 대한 내밀한 의식의 일부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근대 문명의 이면을 날카롭게 감지한 시인 김소월이 환기하는, 자연에 대한 어떤 기대의 반영일 수도 있겠다. 자연의 폭력성을 모르는 의식은 순진무구하지만, 근대 문명의 후예들 또한 여전히 자연에서 (자기)치유의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것도 현실이 아닐까.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차린 신문사 지국도 김소월에게 생활의 방편이 될 수 없었다. 예술과 생활의 균열 속에서, 농사를 지으며 돈타령을 할 수밖에 없었던 시인! 관절염을 다스리기 위해 복용했다는 아편이 결국 그의 천재를 일찍 거둬들이고 말았지만, 부재하는 에 대한 그리움이 남긴 그의 시편들은 지금까지도 지속적인 공감력을 지니고 있다.


군말

   이 시를 지배하는 것은 리듬이다. ‘리듬이 시의 정서를 암시하고 환기한다. ‘리듬을 위하여, ‘강변에 살자’, ‘반짝이는’(개벽)강변 살자’, ‘반짝는’(시집 진달래꽃)으로 고치지 않았겠는가. 다만 시집의 금래빗모래빗의 오식이다. ‘갈잎가랑잎의 준말이기도 하고, 떡갈나무의 잎(떡갈잎)이나 갈대의 잎(갈댓잎)이기도 하다.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독자의 몫이다.

   김소월은 1920창조創造(5)낭인浪人의 봄,의 우적雨滴,오과午過의 읍등을 발표했다. 낭인의 봄등이 같은 음절수의 기계적인 반복과 상투적인 표현, 그리고 어색한 국한문 혼용에 그친 습작에 지나지 않지만, 같은 해 학생계學生界(1)에 발표한 먼 후일後日은 탁월한 근대 시인의 출현을 알리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김소월은 오산학교를 다녔고, 당시 교사였던 김억金億의 지도를 받았다. 김억은 우리 근대시가 움틀 때 프랑스 시를 번역, 소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던 인물이다.

   북한 학자에 따르면, 김소월이 자신의 글을 지면에 처음 발표한 것은 이보다 몇 년 앞선 1916년이다. 김소월이 홍단실洪丹實과 결혼한 것도 이 즈음이다. 김소월이 서울에서 발간된 잡지 근대 사조(19161월호, 탈고 일자는 1915. 4. 15.)에 발표한 글은 긴 숙시熟視라는 산문이다. 다음은 그 일부이다.


   사막의 전일은 락원이었다. 붉은 장미, 흰 백합도 피었고, 무궁화도 미소를 가지고. 자긍(自矜)하였다. 저의 보는 바 지금의 사막은 전에는 사막이 아니었다. 전에는 옥토였다. 광명이 찬란하던 붉은 토지였었다. 지금의 사막은 본래의 옥토였었다.

  한것이러니 맹렬한 광풍(狂風)에 당하여 지금에 보이는 독사(毒沙)로 덮였다.“(엄호석, 김소월론, 29.)

         

   『동아일보한가히 향촌생활을 하는 소월 김정식이 평안북도 구성군 서산면 평지동 자택에서 24일 오전 8시에 돌연 별세하였는데 그가 최근까지 무슨 저술에 착수 중이었다 한다.”, 그의 죽음을 알렸다.


손병희 / 이육사문학관장 

▼▼▼스페인 밀레니엄 합창단 엄마야 누나야 + 섬집아기영상 바로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3F8iJMDp8W0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21-09-30 10:08:50 시 읽기 시인 읽기에서 이동 됨]
Facebook Twitter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 Naver
관리자

관련자료

이육사문학관 (사)이육사추모사업회

우) 36604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백운로 525
전화: 054-852-7337
팩스 : 054-843-7668
이메일: yuksa264@daum.net
개인정보보호책임 : 윤석일

Copyright 2020 by 이육사문학관 웹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