酩酊(명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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酩酊명정

   

        임병호(19472003)

 

한 닷새쯤 오욕의 땅 밟지 않고

기차에 올라 휘 한바퀴 돌아올 수 있는 땅을

한 번 찾아가 보았으면 좋겠다

엉긴 피같은 노역의 홑옷 벗어던지고

생채기 뿐인 양단의 사슬 풀어버리고

외딴집 찌든 처마며 삽짝이며 토담쯤 잠시 잊고

서말쯤 막걸리라도 들여놓고

낯선 사람들 틈에 끼어앉아

구름 걸린 높다란 하늘쯤 얘기하며

술잔이나 건네다가

三日長醉삼일장취 酩酊명정에나 들었으면 좋겠다

들꽃이 두 눈 가득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소나기 퍼붓듯 차창을 때리고

흰 눈이 살같이 흐르는

그런 時速시속쯤으로

광활한 대륙을 돌아들면 좋겠다

모두들 제 삶의 모습으로

쓰러지고 엎어져 꿈속에나 빠져 헤맬 때

툭툭 몸 털고 몇번 눈이나 부비며

한 닷새 큰 수리처럼 머물렀던

기차를 배웅할 수 있는 땅이

내 사는 곳이었으면 참 좋겠다.

 

-시집 저숲의 나무들이 울고있다에서

 

 

   임병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저숲의 나무들이 울고 있다(도서출판 맥향,1999)에 수록된 시 酩酊이다. 이 시집 후기에 임병호 시인은 내게 있어 삶은 빚이며 시를 쓴다는 것은 그 갚음이다. 어떤 바램도 아닌 시만이 가득한 세상이면 좋겠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酩酊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술에 몹시 취한 것을 말한다.


김연진 / 이육사문학관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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