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昏(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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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昏황혼
이 육 사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맘으로 黃昏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人間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黃昏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보련다
그리고 네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다오
저― 十二星座십이성좌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鍾종소리 저문 森林삼림 속 그윽한 修女수녀들에게도
쎄멘트 장판 위 그 많은 囚人수인들에게도
의지가지없는 그들의 心臟심장이 얼마나 떨고 있을까
고비沙漠사막을 끊어가는 駱駝낙타탄 行商隊행상대에게나
아프리카 綠陰녹음 속 활 쏘는 인디언에게라도
黃昏아 네 부드러운 품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地球지구의 半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다오
내 五月오월의 골방이 아늑도 하오니
黃昏아 來日내일도 또 저― 푸른 커―튼을 걷게 하겠지
情情정정이 사라지긴 시냇물 소리 같아서
한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 보다
―五月의 病床병상에서―
「황혼」(1935, 『신조선』)은 이육사李陸史(1904-1944) 시의 출발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각 연이 네 줄로 된 다섯 개의 연으로 짜여 가지런한데, 이러한 정형성整形性은 이육사 시형태의 한 특성이기도 하다.
시 끝에 덧붙여진 ‘오월의 병상에서’가 일러주듯이, 「황혼」의 화자話者는 병약한 몸으로 ‘골방’에 있다. 구석진 작은 방에서 쇠약한 몸을 추스르는 화자는 커튼을 걷고 ‘황혼’을 ‘정성된 맘으로’ ‘맞아들’인다. 그 바탕에는 인간이 고독한 존재라는 실감과 탄식이 있다. 이 ‘영접’을 통해, 화자와 황혼은 서로에게 스민다. 이제 ‘황혼’과 화자는 하나이면서 둘이자,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황혼’의 영접을 통해, 작은 ‘골방’은 우주처럼 부풀고, 병약한 화자는 ‘지구의 반쪽’을 싸안으려는 거대한 사랑의 주체로 팽창한다. 화자와 그의 사랑은 수직으로 상승해 ‘반짝이는 별들’에게까지 솟아오르고, ‘수녀들’과 ‘수인들’, 그리고 사막의 ‘행상대’와 아프리카 원주민에 이르기까지, 고독한 모든 이들에게 수평적으로 확산한다. 하늘로 치솟고 땅으로 널리 퍼지는 이 사랑은 ‘타는 입술’처럼 뜨겁고, ‘지구의 반쪽’을 감쌀 만큼 우주적이다.
‘황혼’은 고독한 세계를 자신의 체온으로 품으려는 화자의 분출하는 욕망의 상관물, 하나의 비유이자, 우주적 사랑을 꿈꾸는 (화자의) ‘타는 입술’의 공간화이다. 자연적이며 물리적 현상인 ‘황혼’의 색채감은 불‘타는’ 욕망의 강렬함과 열기를 효과적으로 환기한다. ‘황혼’은 소멸 직전의 빛이 내뿜는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은 순간적이고, 그래서 비극적이다. 마침내 화자는 도취와 열망에서 깨어나 다시 현실의 ‘골방’과 ‘병상’의 몸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다.
팽창한 의식과 공간은 수축하고, ‘정정이 사라지긴 시냇물 소리 같아서/ 한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 보다’와 같이, 우수와 비애의 정서가 싹튼다. 그것은, 화자의 열정을 매개하는 외부(‘황혼’)가 스러지면서 지향과 확산의 방향을 잃어버린, 열망의 쓸쓸하고도 고적한 내면풍경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병상’의 ‘골방’이 ‘아늑도’ 한 것은, ‘황혼’처럼 팽창한 의식과 우주적인 사랑을 경유한 화자의 기대와 상상의 작용일 터. 우주적 팽창과 확산을 자신의 열망 속에서 경험한 화자는, ‘황혼’에 대한 도취가 다시 이어질 것을 기대하고 예감한다. 「황혼」의 형태적 완결성에도 불구하고, 이 단속적인 지속성에 대한 기대와 예감이 의미 상 시의 끝을 첫머리에 다시 이어준다.
이 순환이야말로 화자의 의식이 수축과 팽창, 응집과 확산의 운동을 거듭하고 있음을 적절히 일깨운다. 동시에 ‘골방’과 ‘황혼’, 개체적 자아의 공간과 우주적 자아의 공간으로 그 부피가 늘고 주는, 공간 심상의 역동성을 통해 「황혼」의 주제와 감동을 효과적으로 구축한다. 그것은 우주적 사랑의 실천을 꿈꾸는 병약한 주체, 그리고 현실과 미래 사이에서 유동하고 순환하는, 고결하고 낭만적인 이상주의자의 의식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것이리라. 일제의 거듭된 구금과 옥고의 후유증으로 요양 중이던, 당시 이육사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군말
이육사의 아우이자 당대 저명한 문학비평가였던 이원조는 『육사시집』(1946. 서울출판사)을 펴내면서, 「황혼」의 ‘情情이’를 ‘暗暗암암히’로 교열했다. ‘암암히’는 ‘기억에 남은 것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하게’, ‘깊숙하고 고요하게’의 뜻이다. 앞의 뜻에 해당하는 비슷한 말로는 (눈에) ‘선하게’가 있다. 당시 출판 상황 상 오식은 아주 흔한 일인데다, 육사 형제 사이에 이에 대한 언급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고 문맥 상 적절하다는 점에서, 이원조의 이러한 교열은 신뢰할 만하다.
그런데 필자는 ‘情情’을 ʻ悄悄초초ʼ의 오식일 가능성을 주목하면서, ‘悄悄히’를 ʻ조용히ʼ, ʻ몰래ʼ, 혹은 ʻ시름없이ʼ, ʻ서럽게ʼ로 새긴다. ʻ悄悄하다ʼ는 ʻ근심과 걱정으로 시름없다ʼ는 뜻인데, 현대 한어漢語(중국어)에서는 소리나 행동을 ʻ은밀히ʼ, ʻ몰래ʼ 한다는 뜻과 ʻ조용하다ʼ, ʻ소리를 낮추다ʼ, ʻ은밀하다ʼ는 뜻이다. ʻ悄悄ʼ는 이육사가 「중국 현대시의 일단면」(『춘추』, 1941. 6.)에서 번역, 소개한 서지마徐志摩(쉬즈모)의 시 「再別康橋재별강교」에 나오는 시어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 ʻ悄悄ʼ를 이육사는 ʻ서럽다ʼ로 옮겼는데, 「황혼」에서도 문맥 상 그런 뜻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글자의 모양도 ‘悄悄’와 ‘情情’은 매우 닮아, 오식의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손병희 / 이육사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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