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의 ⌜의의란도(依依蘭圖)⌟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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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의 친필로 알려진 난초 그림 가운데 의의란도(依依蘭圖)⌟*가 있다. 친견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는데, 이육사문학관의 주선으로 올해 226일 마침내 이 그림을 마주할 수 있었다.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을 기념해 조선일보와 예술의전당이 함께 주최한 한글 특별전 ㄱ의 순간에 출품되어 있었는데, 관람자인 나에게는 아주 큰 행운이었다. 인터넷에서 이미지로만 볼 수 있었던 이 그림을 직접 바라본 즉, 그간의 설렘은 곧바로 벅찬 감동으로 바뀌었다.

 

  흐트러짐 없이 깨끗하고 결단력 있는 필치, 넉넉하고 개운한 공간 배분, 운필의 강약(强弱)과 비수(肥瘦)와 전절(轉折), 알맞은 농담(濃淡), 또한 그림과 글씨의 절묘한 조화, 무엇보다 화면 전체에 요동치는 생동감! 이 그림이 주는 감동은 이육사가 꿈꾼 馥郁(복욱)하고 淸冽(청렬)한 향기**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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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이육사(李陸史, 1904~1944), 의의란도(依依蘭圖), 지본 수묵, 24.233.8㎝(개인 소장, 출처 : 예술의 전당)

 

  그림의 바탕은 한지(韓紙)이다. 의의란도(依依蘭圖)에는 화제와 호만 쓰여 있고, 관지(款識)는 없다. 대개 서화는 낙관(落款), 곧 작가 자신의 이름이나 호를 쓰고 인장을 찍는 일로 마무리하게 되는데, 제작 당시 인장을 휴대할 사정이 못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낙관이 오히려 쓸데없어 보일 만큼 그림의 구도는 참으로 잘 짜여 있다. 개성적이고 수준 높은 기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이러한 감동의 원천이 무엇이겠는가? 이육사는 수필 季節五行(계절의 오행)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들개에게 길을 비켜줄 수 있는 겸양을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정면으로 달려드는 표범을 겁내서는 한 발자욱이라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내 길을 사랑할 뿐이오. 그렇소이다. 내 길을 사랑하는 마음, 그것은 내 자신에 희생을 요구하는 노력이오. 이래서 나는 내 기백을 키우고 길러서 金剛心(금강심)에서 나오는 내 시를 쓸지언정 유언은 쓰지 않겠소.


   금강심! 이것은 이육사 시의 전편에 흐르고 있는 시혼(詩魂)이다. 금강심으로 내 시를 썼듯이, 금강심으로 난을 쳤다.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금강심으로 저, 한마음 되어 잎이 흔들리는 난의 의의(依依)을 보았고, 이러한 시심으로 양호필(羊毫筆)같이 하얀 봉오리가 달린난 꽃의 향기를 온 화면에 퍼뜨려서 그렸다. 그윽하고도 맑고 차가운 향기, 이것이 선생의 의의란도가 표출한 궁극의 정신세계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주역계사(繫辭) ()에서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을 수 있고, 마음을 같이 한 말은 그 향기가 난과 같다.”라고 하지 않았는가***.또한 이런 의미로 마음을 터놓는 사귐을 금란지교(金蘭之交)라 하고, 뜻을 같이하는 모임을 난맹(蘭盟)****이라 하게 되었다 하니, 이육사와 같은 순국 지사가 난을 그리워함이 이에서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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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정섭(鄭燮, 1693~1765), 지란위의도(芝蘭爲意圖) 

 

  윤명(允明)이라는 자를 쓰는 새로운 벗을 이즈음에 만나게 되었다. 그는 관심 분야의 폭이 넓은 데에다 그림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의의란도에 대한 감상문을 이렇게 보내왔다.

 

   의의란은 화면의 좌하에 뿌리를 둔 상태에서 잎들이 나머지 공간으로 마치 화산이 분출하듯 뻗어나가는 모습이다. 꽃은 자연스럽게 피거나 피려고 하고 있다. 노지 한 켠에서 자라지만 자신이 가진 생명에너지를 전 공간에 분출함으로써 공간을 생명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이육사 선생께서는 의의란을 통해 죽음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 자신의 생명에너지를 표현하고 싶으셨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런 마음과 자세는 군자의 것이기도 하고, 이육사 선생이 삶으로 구현한 모습이기도 하다.

 

 

이번에 전시된 묵란도에는 '依依可佩(의의가패)'라는 화제(畫題)가 적혀 있다. 그래서 의의란도(依依蘭圖)라고 이름을 붙여 보았다. 예술의전당은 이 그림을 2010년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 기념 특별전 '붓 길, 역사의 길'에서 전시한 바 있다. 가로 33.8, 세로 24.2. 어느 개인이 소장한 이 그림은 육사가 둘도 없는 친구인 신석초(1909~1975)에게 주었던 것으로, 1974년 잡지 나라사랑” 16집에 육사의 미발표 유고인 '바다의 마음'과 함께 사진이 실리면서 공개됐다고 한다.

** 김용직·손병희 편저, 靑蘭夢(청란몽), 李陸史全集(이육사전집), 깊은샘, 2004. 169.

*** 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 (이인동심 기리단금, 동심지언 기취여란)

**** 추사(秋史)30여 년 동안 난치는 법을 배우고 익힌 끝에 터득해낸 추사 난법(蘭法)의 요체(要諦)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을 모아, 이런 아름다운 의미를 생각하고 난맹첩(蘭盟帖)을 꾸몄다.

 

 

                                                                                                       ■권기윤 / 안동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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