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시대 빛나는 정신

작성자 정보

  • 작성일
  • 조회 709
  • 작성자 관리자

컨텐츠 정보

본문

 990f8c6127699b91b7549fed9d7e7d80_1618109599_5534.jpg   

   990f8c6127699b91b7549fed9d7e7d80_1618109626_9752.jpg 

 「질투의 반군성」, 『풍림』 제6집, 1937. 5.


  자신의 수필 질투의 반군성(嫉妬叛軍城)에서, 이육사는 자신이 부정할 바를 부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지 않는 고민을 혼자 무한히 고민한다고 했다. 부정할 것을 마땅히 부정하는 것, 남에게 요구함이 없이 스스로 시대와 역사의 짐을 지는 것, 그것은 어느 시대든 남다른 의지와 자기희생의 각오 없이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을 이육사는 어두운 밤, 태풍과 폭우 속에 겨우 발끝밖에 비추지 못하는 전등을 들고 바다를 향했던 경험에 빗대고 있다. 태풍과 폭우, 어둠을 뚫고서야 마침내 영롱하게 빛나는 바다의 일면!”과 대면한 경험은, 그것이 심미적인 것이든 그것을 넘어서는 역사적이고도 정치적인 문맥의 것이든, 현실의 난관을 뚫고 나가려는 의지의 산물이다. 이육사가 나는 아직도 꿈이 아닌 그날 밤의 바닷가로 태풍의 속을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라고 끝맺은 것은, 이후 그가 걸어갔던 항일 투쟁과 순국의 길을 미리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유언을 거부하고 단호히 행동의 연속만이 있을 뿐이라고 한 이육사는 자신에게는 시를 생각하는 것도 행동이라고 했다. 이육사는 온갖 고독이나 비애를 맛볼지라도 <시 한편>만 부끄럽지 않게 쓰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스스로 시인으로서의 자의식과 지향을 뚜렷이 밝힌 것이기도 하다. 절정, 광야, 청포도와 같은 그의 시편들이 오늘날까지 지속적인 공감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그것을 웅변하고 있다. 따라서 항일 시인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이육사의 모든 시편들을 정치적 저항의 차원에서만 해석하려는 강박증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항일 투사로서의 이육사 또한 마땅히 본받고 기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인 이육사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이육사의 시가 주는 감동을 실감하는 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시는 시인의 풍부한 의식세계를 다채롭게 형상화하는 까닭에, 독자는 시를 통해 시인의 내면과 시인이 경험한 시대를 다시 살아 볼 수 있다. 이육사의 시가 축조한 심미적 세계를 실감 있게 느끼는 것이 이육사와 그가 산 시대를 이해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육사는 일제 식민지의 어두운 시대, 부당한 세계와 훼손된 삶을 강렬하고도 정직하게 드러낸 시인이다. 그러나 그는 식민지 시대의 찢긴 삶을 다만 드러내는 데 머물지 않았다. 그를 뛰어넘어 그것을 치유하고 훼손되지 않은 시간과 공간을 그의 시 속에 굳건히 쌓아 올림으로써 시인으로서의 자기완성을 이룩했다. 청포도에서 형상화한, “고달픈 몸손님을 환대하고 삶의 즐거움을 함께 향유하는 평화롭고 해방된 세계가 그것이다. 그 세계는 이육사가 출발기의 시 황혼에서 그린, 세상의 모든 외롭고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하려는 우주적 사랑의 일상화이자 구체화이기도 하다. 그의 항일투쟁과 순국 역시 그의 사랑이 구축한 예언적 미래에 바친 거룩한 자기희생의 과정이었다. 그 바탕에는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간을 착취하는 부당한 세계를 해체하고 해방된 세계를 앞당기려는 윤리적 확신이 자리하고 있다.

거듭 말해 이육사는 망국민의 일그러진 삶을 치유하는 해방된 조국, 나아가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해방된 세계에 대한 윤리적 소망과 확신 속에 살아 있는 미래를 시적 현실로 형상화하였다. 온 겨레가 정치적 노예의 신분에 있을 때, 절망하지 않고 해방된 세계를 예언하고 그 씨앗을 뿌린 이육사를, 우리는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빛나는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손병희/이육사문학관장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21-06-01 13:06:37 인문학 맛집에서 이동 됨]
Facebook Twitter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 Naver
관리자

관련자료

이육사문학관 (사)이육사추모사업회

우) 36604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백운로 525
전화: 054-852-7337
팩스 : 054-843-7668
이메일: yuksa264@daum.net
개인정보보호책임 : 윤석일

Copyright 2020 by 이육사문학관 웹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