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 신석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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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 서신(엽서)

사이즈 : 9cm×14cm

날짜 : 1936년 7월 30일 (소인)

원본
-보내는 사람
慶北 浦港 幸町 徐起源 方 陸史弟

-받는 사람
忠南 舒川郡 華陽面 活洞里 申應植 我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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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石艸兄! 떠나서 大邱에 오니 귀病이 나서 한 週日 治療를 햇지요 그리고 中途 慶州서 一泊하고 佛國寺를 단녀서 昨夜 이곳에 왓음니다. 海岸까지는 三十町 가령. 뻐쓰가 잇음니다. 明沙 五十里에 東海의 잔물결이 두 사람의 거러 간 자취조차 쓰처바리지 못하고 보드랍게 할터 감니다. 깨끗한 日光 海面에 接觸되는 지음 류달니 빗남니다. 함게 와서 보앗드면 야복 조화하지 안을 것을 健康하소서


  현대어

  -보내는 사람

  경북 포항 행정 서기원 방 육사 제

 

  -받는 사람

  충남 서천군 화양면 활동리 신응식 아체

 

  석초 형! 떠나서 대구에 오니 귓병이 나서 한 주일 치료를 했지요. 그리고 도중에 경주서 일박하고 불국사를 다녀서 지난 밤 이곳에 왔습니다. 해안까지는 30(1정은 약 109미터 이다.) 가량. 버스가 있습니다. 명사 50리에 동해의 잔물결이 두 사람의 걸어간 자취조차 씻어버리지 못하고 보드랍게 핥아 갑니다. 깨끗한 일광, 해면에 접촉되는 즈음 유달리 빛납니다. 함께 와서 보았다면 여북 좋아하지 않을 것을. 건강하소서.

 


 당시 이육사의 상황

  육사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졸업생임이 드러나 1934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된다. 이후 육사는 19356월에 춘수삼제(春愁三題), 12월에는 황혼(黃昏)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시작(詩作) 활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해에 위당 정인보(爲堂 鄭寅普) (내수동)에서 평생의 지기가 될 신석초를 만나 사귀게 된다. 당시 육사는 석초와 함께 정인보, 민세 안재홍(民世 安在鴻)을 도와 다산 정약용 서세 99주기 기념 다산문집(茶山文集)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신조선사) 간행에 참여하였다. 또한 석초와 함께 신조선사(新朝鮮社)신조선(新朝鮮)편집에도 참여하게 된다. 이듬해인 1936년에는 그의 수필 질투의 반군성에서 보이듯 7월에 동해 송도원(포항 소재)에서 요양을 하게 된다. 이 엽서는 그 무렵에 쓰인 것으로 730일 소인이 찍혀 있으며, 엽서 뒷면에는 불국사 다보탑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다. 보내는 사람은 경북 포항 신정 서기원 방 육사 제(慶北 浦港 幸町 徐起源 方 陸史 弟)’, 받는 사람은 충남 서천군 화양면 활동리 신응식 아체(忠南 舒川郡 華陽面 活洞里 申應植 我棣)’로 표기되어 있다. ‘아체(我棣)’는 형제 같은 사이를 뜻하는 것으로, 석초를 생각하는 육사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준영 / 이육사문학관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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