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시인의 안동 이야기

베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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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시절 잊지 못하는 게 하나 둘이 아니지만 그 중에 안동포가 있다.

   오늘은 그것으로 인간문화재가 된 안동군 임하면 금소동 배분령 할머니 기억이다.

   금소동은 집집마다 삼베를 짜서 다른 지역에서는 이곳을 삼베 마을로 부른다.

   금소동에는 40명의 직녀(織女)가 있다.

   여름날 임하천을 끼고 걸어 금소동 입구로 들어서면 온통 키가 우뚝한 삼대밭이 보인다.

   높이가 거의 3m는 훨씬 넘으리라.

   그 삼대를 가마에 넣고 푹 쪄서 말렸다가 질긴 껍질을 한 올씩 가늘게 찢어 뽑아 풀을 먹인다.

   삶을 땐 잿물을 넣어 삶아 외피를 벗겨낸다.

   그 외피가 안동포의 주재료이다.

   찢을 때 가늘게 잘 찢는 게 고급 안동포의 비결이다.

   얼마나 가는가에 따라 안동포의 품질이 결정된다.

   보통 여섯 새에서 아홉 새까지 있는데, ''라는 말은 실의 가는 정도를 일컫는 말이다.

   찢을 때 한쪽 끝을 앞니로 물고, 다른 쪽은 무릎 위 뽀얀 속살에 비빈다.

   배분령 할머니는 17세부터 베틀에 앉았다.

   시집 와서도 열흘만에 시어머니가 베틀에 앉혔다.

   젊은 시절부터 허벅지 속살 드러내고, 거기에 비비기를 평생토록 수십 년 해왔으니 그 무릎의 상태가 어떨것인가?

   피멍 들고 아물기를 수백 차례 비비던 자리는 딱지가 앉고 굳음살이 붙었다.

   희뽀얀 여자의 속살에 이게 웬말인가.

   이렇게 만든 실을 감아 베틀에 걸고 삼베를 짠다.

   철커덕 털럭 철커덕 털럭 하루 온종일 짜고 날밤을 새워 짠다.

   틈틈이 밥 짓고 빨래하고 아기 젖도 물린다.

   보통 한 필 짜는데 보름 걸린다.

   노동으로 치면 아주 고되고 힘든 노동이었다.

   퍼붓는 잠을 떨쳐내려고 베틀가를 부르는데, '잠아 잠아 오지 마라' 라든가

   시집살이의 설움이나 애환을 하소연하는 그런 슬프고 눈물나는 내용이 많다.

   배분령 할머니의 베틀노래를 듣노라니 갈라진 조국에 대한 탄식과 통일염원도 담겨 있다.

    

   '베전을 살펴보니/ 갈색 마포가 들어찼다/

   농포 세포 의포 안동포/ 베는 바리 안에 드는 베라'

 

   배분령 할머니의 베틀노래를 듣고 돌아와 그날 밤 '베틀노래'(1979)라는 한 편의 시를 썼다.

   만주로 떠나가 소식 없는 낭군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을 담은 한탄과 갈망을 담았다.

 

 

   예서 거기까지 건너갈 수 있도록

   흰 구름 다리 하나 엮어주셔요

   그대 맘 이 마음에 이어지도록

   임이여 가슴 한 쪽 열어주셔요

   안으로 오래 걸려 잠긴 문고리

   풋사랑에 맑게 닦여 언뜻 열려 주셔요

   목놓아 불러도 되돌아 오지 않는

   베틀소리만 쩔꺽쩔꺽 저홀로 사라지고

   그 누가 애태우는 나의 속맘을

   눈감고 어림이나 하여 줄까요

   그 모든 살그리움끼리 서로 만나려는

   푸른 유월 초순의 칡다래 넌출마냥

   하늘로 하늘로 벋어가는 손짓도 보일까요

   가로올과 세로올이 마주 얼려서

   부둥켜안고 만들어내는 헝겊도 보일까요

   그대 사랑 맞으려는 이 마음의

   가슴 한 쪽을 먼저 열겠어요

   예서 거기까지 건너갈 수 있도록

   참한 오작교 하나 먼저 짜겠어요

   짜다가 못 다 짜고 쓰러지면은

   깁 한 조각 어린 것에게 남겨주지요

   내 넋이 두웅둥 그대 품으로 파고들 때

   아, 비가 오시네요

   향그런 눈물비가 오시네요

                  - 베틀노래전문


■ 이동순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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