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에세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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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청미래 출판사,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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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고 싶은 사랑의 방식

 

주인공 는 우연이지만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랑을 하게 된다. 믿기지 않는 확률로 비행기 옆자리에 탄 클로이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된 이유처럼 사랑에 빠지면 앞뒤도 보지 않고 격렬히 사랑을 하는 를 보고 놀라움을 느꼈다. 하지만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면서 완벽하지 못한 점을 보면 사랑을 식기도 하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는 클로이의 그런 결점까지 사랑스럽게 느낀다. 어떻게 결점들이 사랑스럽게 보여 상대방의 모든 면을 사랑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정말로 책을 읽으면서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제대로 된 정체성을 소유할 능력을 상실한다라는 구절이 기억에 남았다. 이 구절을 책 속에서 읽고 나서 기억에 남은 이유는 주인공과 클로이의 사랑을 통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느낀다. 이 두 사람처럼 사랑이 없었더라면 서로가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나누면서 느끼는 감정과 자아의 성장을 얻지 못했을 것인가, 자신의 정체성조차 이해하지 않고 살아갔을 것인가 정말 의문이 많이 들고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주인공과 클로이는 운명을 가장한 우연의 사랑을 통해 각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서로의 품에서 위로를 받고 사랑을 받으며 시간을 보낸다. 두 사람은 사랑을 통해 자신에 대해 알게 되고, 사랑의 감정으로 행복을 느꼈다는 것을 보고 의문이 풀렸고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말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사랑이 자아를 성찰하게 해주고 나에 대한 정체성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사랑은 한순간이며, 착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내가 로맨스가 포함된 책이나 영화를 자주 보지 않는 이유 또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사랑도 아닌데 남의 사랑을 주위 깊게 보고 어차피 영화 같은 것은 배우들이 사랑 연기를 하는 것뿐이라서 득이 될 것이 없다고 느꼈다. 고작 20년밖에 살지 못했으면서 사랑에 대해 운운하는 것은 이상할지 몰라도 이 책을 통해 나의 20년 동안 생각하며 살았던 나의 사랑에 대한 가치관을 바꿔놓았다. <왜 나는 너를 사랑했는가>의 주인공의 사랑을 통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과 겪어볼 수 있는 일을 볼 수 있어서 인상 깊었고, 현실적인 사랑을 책으로 느낄 수 있었다. ‘와 클로이의 사랑으로 인해 나도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 사랑 속에서 오해가 생기고 클로이는 점차 에 대해 사랑의 감정이 식어가게 된다. 나의 사랑이 아니기에 이 두 사람의 사랑이 깨지더라도 책임 지거나 헤어짐으로 인해 슬픔을 느끼고 싶지 않다. 사랑의 감정은 행복한 감정이기에 느껴도 상관없지만 슬픔은 나에게 독이 될 수 있고, 나의 깊은 마음속까지 자리매김할 수 있기에 그런 감정은 내가 비로소 슬픔을 느낄 때만 느끼고 싶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이 두 사람의 사랑을 보고 안타깝다고만 생각하며, ‘가 클로이의 감정을 잘 헤아려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는 자신에 대해 관심과 사랑이 식어가는 클로이를 보고 질투라는 도박을 걸게 된다. 테러리스트라는 이름의 삐침을 통해 자신에게 사랑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상대방에게 주게 된다. 삐침이라는 표현으로 사랑을 요구하여 클로이의 관심을 얻게 되지만 결국에는 클로이한테 헤어짐을 당한다.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여 클로이에게 질투라는 무기로 도박을 걸고, 테러리스트라는 표현을 쓴 것을 보고 적절한 언어라고 생각하였다. 감정으로 인해 자신이 테러리스트가 되어 사랑을 얻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것은 아닐까라는 고민을 하며 주인공 는 정말로 클로이를 사랑했고, 자신도 사랑을 받고 싶었다는 것을 의 행동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책에서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느끼기에 각자가 이루고 싶은 사랑도 다양하고 다르기 때문에 사랑의 방식 또한 다양하여 한 가지로 정의 내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파트너 선택


파트너를 고를 수 있다면 신중하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의 파트너를 선택하는 게 제일 좋을 것이다. 나는 어떠한 파트너를 고를지 아직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알랭 드 보통은 이상화라는 것을 통해 가 클로이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운명을 가장한 우연의 만남으로 사랑에 빠지는 것은 가 파트너를 선택하는 기준이자 습관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한 습관으로 사랑에 빠져 자신의 파트너에게 자신이 선택하여야 하는 모습을 이상화하고 파트너의 행동과 말, 결점까지 사랑하게 되어 완벽하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완벽한 사람일지언정 우리는 사랑을 하게 되면 처럼 푹 빠져서 그 사람의 모습에 대한 흠을 알려고 하지 않고, 그러한 흠조차 보듬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사랑에 퐁당 빠져서 앞뒤 분간을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감정이나 행동이 예측 가는 사람은 바로 사랑에 빠진 사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사랑에 빠지기 전에는 자신의 파트너가 될 사람의 모습에 대해 이상화 시키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부족하지 않는 완벽한 사람을 원한다. 한순간에 사랑에 빠지게 되면, 서로의 마음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점과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파트너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서로의 이상향을 원하고, 그것에 맞춰가면서 사랑을 하여 서로가 서로의 파트너로 선택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욕망으로 인해 끊임없이 사랑을 추구하고 사랑을 할 사람을 찾으면서 분출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상향에 맞는 사람만을 추구하려고 하지 말고, 눈앞에 있는 사람의 겉모습을 사랑하여 파트너를 신중하지 못하게 선택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파트너는 자신의 이상향에서 비슷하지만, 다르게 표현되고, 결점이 있더라도 품어주고 품을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이자 사랑을 서로 주고받아 외롭지 않게 해주는 사람을 선택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결혼과 가족


어린 시절부터 결혼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지금이 되어서도 결혼은 옳은 것인지, 옳지 않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의 주변 어른들은 거의 젊은 시절에 결혼을 하여 아이를 놓고, 가족이라는 구성원을 이르고 살고 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보면 결혼은 나쁘지 않으며 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나는 결혼에 대해 극구 반대하는 사람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 읽던 동화책에는 결혼이 아주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위해 거쳐야 할 절차로 보였으며, TV 프로그램에서도 남녀가 사랑을 하며 결혼이라는 절차를 통해 더욱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고 결혼에 대한 이상이 높아졌다. 이런 모습을 통해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결혼에 대해 반대하게 된 계기는 결혼이라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행복하지는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게 되면 한 사람과 오랜 세월을 같이 맞추며 살아가야 하고, 살면서 행복한 감정의 느낌이 들지 않아도 억지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결혼이라는 제도는 불합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행복하기 위해 결혼을 하였지만, 결혼을 한 후의 나는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기에 보통의 어른들에게 결혼해서 행복하신가요?, 결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을 하면 거의 절반 이상은 행복을 위해 결혼했지만, 그렇지 않다.’ 또는 행복만 하려면 결혼을 하지 않았겠지.’라는 대답을 할 것이다. 내 주변의 어른들조차도 이 질문을 하였을 때 절반 정도는 나에게 결혼을 추천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존재가 있기에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아 가족 구성원을 만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행복하려고 한 결혼인데 행복하지 않다면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결혼 이후 가 행복하지 않을까? 결코 행복할 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조차 도는 나도 알고 있다. 서로가 20년 넘게 따로 살면서 가끔 만나서 데이트하고 서로 사랑하기에 행복하기에 결혼을 하였는데, 결혼 후에는 같이 살아야 하기 때문에 맞지 않는 부분이나 부딪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결혼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 시월드를 겪고 싶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면 라는 존재는 여자가 아닌 엄마나 아내, 며느리라는 존재로만 치부될 것이기 때문에 나는 나로서 살아가고 싶어 결혼을 하기 싫다고 말하고 싶다. 한마디로 결혼은 사랑이 최종적인 관문이라고 생각하고, 가족이 되기 위한 단계이다. 가족은 혈연관계로 이어진 사람이라고 사전에 명시되어 있다. 나는 가족이 무조건 혈연관계여야만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입양하여 피가 섞이지 않아도 내가 품어서 사랑을 주고받으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내가 보듬거나 애정을 주어 같이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가족이라고 느끼고 있다. 나는 정이 많은 사람이기에 가엽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해주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그러한 사람들이 나의 도움으로 행복해지고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 속해주어 앞으로의 행복을 책임져주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노숙자나 고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슬픔을 느끼고 힘듦을 느끼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요양원 봉사를 갔는데 그중에서 유독 겉도시는 분과 친하게 지내고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가 도움이 되어 정을 쌓아간다면 그것은 가족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혈연관계도 나의 가족이지만, 그 외의 입양자나 마음이 쓰여 보살펴드리고 싶은 사람도 가족이라고 말하고 싶다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의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진 집단이라고 표현된 것처럼 일반적인 가족의 의미는 결혼으로 인해 구성된 피를 나눈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책에서 와 클로이의 사랑을 만남, 권태기, 질투, 이별이라는 일들을 1년이라는 기간을 설정하여 보여줌으로써 알랭 드 보통 작가는 사랑의 처음부터 마지막을 보여주려고 한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는 클로이와 헤어진 이후에 슬픔을 느끼지만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가는 것을 보고 사랑은 만남과 이별이 반복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작가가 의 사랑 방식과 사랑에 빠지거나 헤어짐을 당하면 하는 행동을 책을 통해 보여준 이유가 사랑은 모든 인연의 맺고 끝냄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했다고 느꼈다.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다 다르겠지만, 나는 살아가면서 만난 사람들 중 왜 그 사람을 만나 사랑을 했을지 사랑에 빠졌을지 고민을 하게 만드는 그러한 책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직까지 내가 사랑에 빠져 만난 사람들을 왜 사랑하였는지에 대한 이유는 찾지 못하였지만, 그때의 상황이나 그 사람의 행동들 그 외를 보고 사랑을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알랭 드 보통 작가가 쓴 책들은 거의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관심사인 사랑이나 불안 같은 것들을 주제로 쓰였으며, 읽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려고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정의 내릴 수 있다면


사랑의 정의, 그것은 추상적인 것뿐만이 아닌 우리의 감정을 드러내서 이야기할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한 사랑은 정말 아름답고 살아가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사랑이 없다면 삶에 즐거움과 흥미를 잃을 것이다. 그 정도로 사랑이 중요하다고 묻는다면 당연히 '맞다'라고 대답할 것이고, 사랑은 중요하다. 사랑에 대해 정의하자면 이르는 질문을 여러 명한테 하였다. 그로 인해 사랑이란 운명으로 맘대로 안되며, 안 간의 범위 밖에 있어서 예측이 불가한 것과 부족한 걸 채워 주는 관계, 그 사람이 곁에 없어도 떠올리는 것, 어떠한 대상이든 사랑한다면 아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사소한 것이라도 닮아가는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다양한 답변을 받으며 다양한 생각들 속에 사랑은 정의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소중하며 운명이고, 아낌을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전해져서 우리에게 좋은 감정을 주는 것은 아닌가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에 대해 확실하게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사랑한다면 누구든 여러 가지 감정을 갖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 이채은 / 외부청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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