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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의 화단(花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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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사는 원촌에 살던 어린 시절, 할아버지인 이중직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특히 교육적, 정서적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린 육사의 의식을 지배한다. 더불어 할아버지인 이중직으로부터 육형제들은 한학을 공부하게 되는데, 육사가 공부한 책의 종류와 분위기는 수필 銀河水에 잘 나타나 있다. “숲 사이로 무수(無數)한 유성(流星)같이 흘러 다니든 그 고흔 반딧불이 차츰 없어질 때에 가을벌레의 찬소리가 뜰로 하나 가득 차고 우리의 일과(日課)도 달러지는 것이다. 여태가지 읽든 외집(外集)을 덮어치우고 등잔(燈盞)불 밑헤서 또다시 경서(經書)를 읽기 시작하는 것이였고 그 경서는 읽는 대로 연송(連誦)을 해야만 10월중순부터 매월(每月) 초하루 보름으로 있는 강()을 낙제(落第)치 안는 것이였다. 그런데 이 강()이라는 것도 벌서 경서를 읽는 처지면 중용(中庸)이나 대학(大學)이면 단권책(單券冊)이니까 그다지 힘드지 않으나마 논어(論語)나 맹자(孟子)나 시전(詩傳) 서전(書傳)을 읽은 선비라면 어느 권()에 무슨 장()이 날른지 모르니까, 전질을 다 외우지 않으면 안됨으로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였다.” 즉 육사는 할아버지로부터 형식적인 공부를 배운 것이 아니라 논어(論語)와 맹자(孟子)에 이를 정도로 체계적이고 고단계의 한학수업을 배웠다. 매번 시험을 통과해야만 다음 책으로 나갈 수 있는 엄격한 규칙도 있어서 어린 육사에게는 큰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그런 긴장감 때문에 육사의 동양고전에 대한 이해력은 확대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육사 시의 의식의 진중함, 불의에 대한 엄격함 등 육사의 전 생애를 지배하는 정신의 원천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시에 유독 꽃과 한자 어투가 많이 나타나는 것과도 직간접적으로 깊게 연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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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꽃 홍도(紅桃)


  그런데 육사는 할아버지로부터 학문적 영향만 받은 것이 아니라 정서적, 정신적 영향 또한 그에 못지않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다.

   ‘은 육사의 대표작인 靑葡萄는 물론이고 芭蕉(파초), 」 「喬木(교목) 등 시의 제목에도 직접적으로 사용될뿐더러 廣野에서는 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라는 구절을 통해 매화향기로 고양된 자신의 의지를 극대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에 대한 원초적 친근성 역시 할아버지의 영향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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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비 여사 집 뒤뜰에 핀 촉규화(蜀葵花)

 분홍매화


   이런 연관성은 육사 시인의 수필 剪爪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옛날 내 고장 우리 집에는 그다지 크지는 못해도 허무히 적지 않은 화단이 있었다. 그리고 그 화단은 이때쯤 되면 일이 바빴다. 깍지로 긁고 호미로 매고 씨갑씨를 뿌리고 총생이를 옮겨 심고 적당한 거름도 주었다. 요즘같이 시클라멘이나 카네이션이나 튤립같은 것은 없어도 옥매화(玉梅花), 분홍매화(粉紅梅花), 홍도(紅桃), 벽도(碧桃), 해당화(海棠花), 장미화(薔薇花), 촉규화(蜀葵花), 백일홍(百日紅) 등등, 빛도 보고 향내도 맡고 꽃도 보고 잎도 볼 만한하면 일 년을 다 즐길 수 있는 것이었는데, 내 할아버지 생각은 이제 헤아려보면 우리들에게 글 읽고 글씨 쓰인 사이로 노력을 몸소 보이신 것도 되려니와 그것이 정서 교육도 될 겸 당신의 노래(老來)를 화려하게 꾸밀 수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육사 시인 당시에도 시클라멘이나 카네이션’, ‘튤립같은 서양 외래종 꽃들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일부 부유층에게는 보급되었음을 剪爪記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육사 선생의 고향인 원촌은 워낙 시골이어서 매화 류, 복숭아 류 등 꽃과 유실수를 겸하는 실용적 나무들이 주를 이루었고, 조부의 취향의 발로로 해당화(海棠花), 장미화(薔薇花), 백일홍(百日紅), 촉규화(蜀葵花) 등 크고 작은 꽃들이 집안 곳곳에 심어진 화단이 있어서 손자들의 정서교육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촉규화는 접시꽃을 말하고, 벽도(碧桃)는 산() 복숭아를 말하는 것으로 경상북도 북부지방에서는 털이 많다고 까칠복숭아라고도 한다. 식용이라기보다는 관상용으로 씨알은 작으면서 푸른색을 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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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우당(六友堂) 앞뜰에 핀 흰 해당화

 

   매화는 흔히 지조와 절조를 상징한다고 알려졌고, 퇴계선생도 매화사랑이 깊어서 돌아가시기 전에 한 유언이 저 매화에 물을 주거라였을 정도였다고 하니 육사 또한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자랐을 개연성이 크다. 때문에 매화에 대한 육사집안의 애착은 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廣野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는 이런 할아버지의 정서교육과 집안의 내력이 육사 시에 육화(肉化)된 경우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할 수 있다.

  육사 시인은 가고 없지만 그를 기리는 후학들이 이육사문학관 주변에 매화를 매년 식재하고 있으며, 이육사문학관으로 가는 원천리 가로수 일부는 해마다 봄이면 매화꽃이 만발한다. 평소 육사 시인이 좋아하던 해당화(海棠花), 백일홍(百日紅), 촉규화(蜀葵花) 등도 문학관과 육사 시인의 따님인 옥비 여사가 거처하는 목재고택 곳곳에 심어져 시인을 기리고 있다.

   육사 시인은 가도 시인이 남긴 시와 그가 노래한 꽃들은 오늘도 여전히 새로 피면서 육사의 시심(詩心)을 만개 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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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산서원에 핀 매화


 ■ 박승민 /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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