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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아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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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마음을 아실 이」(『영랑시집』, 1935, 시문학사)




내 마음을 아실 이

 

   김 영 랑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잣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히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 드리지

 

! 그립다

내 혼잣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잣마음은

 

   제 마음도 제대로 알기 어려운 게 사람의 형편이 아닌가. 그러니 내 마음을 아실 이를 바라는 것은 애초에 헛된 기대일 수도 있겠다. 더구나 내 혼잣마음이라고 하니. 사정이 이런데도, 여전히 제 마음을 알아주는 이를 바라고 기다리는 것 또한 사람들의 일상이 아닐까. 헛되다는 생각을 보란 듯이 깨뜨리며,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내게 언젠가, 불쑥 나타날 것 같은 그런 생각. 이런 떨쳐 버리기 어려운 막연한 기대와 함께 끝내 그런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불안이 뒤섞인 그런 착잡함. 그래서 우리의 삶은 늘, 카시러Ernst Cassirer의 말과 같이, ‘희망과 불안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시에서 시의 화자 내 마음을 알아 줄 를 꿈꾼다. 화자의 내 마음이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제 혼잣마음이다. ‘혼잣말이 저 혼자서 하는 말인 것처럼, ‘혼잣마음은 저 혼자의 속마음인 혼잣속일 것이다. ‘혼잣마음은 외딴섬에 유배된 자처럼 통로가 막힌 채 쓸쓸히 있다. 그러나 화자는 오롯이 저 혼자 키우고 지닌 마음을 자신처럼 알 수 있는 사람을 상상한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이 지금 제 곁에 있을 가능성을 믿는 것도 아니다. 아니, 화자는 그런 사람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헛되고 부질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3행의 첫머리 그래도가 그것을 넌지시 일러준다.

   ‘그래도앞에는 언어가 되지 못한 채 독자에게 말하는, 어떤 발언이 있다. 삭제되거나 생략되어,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침묵의 언어. 자신이 바라는 대상이 실상 현실에서는 부재하리라는 회의. 그것은 다시 뒤에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라는 자문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접속부사 그래도앞뒤에는 보이지 않는 (통사론적) 단절과 (심리적) 균열이 있다. 그것은 바람과 불안 사이를 오가는, 화자의 미묘하고 착잡한 의식을 효과적으로 환기한다.

   기대에 어긋날 수 있는 현실. 그래도 가 꿈꾸는 어데나 계실 것을 상상하는 일을 그칠 수 없다. 그런데 어데나어디에나의 준말일 수 없다. ‘내 혼잣마음 날 같이 아실 이가 세상 어디에나 있다니. 착잡한 의식이 철부지처럼 그렇게 믿을 리 없다. ‘어데나어딘가/어디엔가정도의 뜻이리라. 그런 까닭에 화자가 꿈꾸는 이는 주소불명 상태이다. 화자는 주소불명인 채로라도 그가 있기를 원한다. 그래야 마음의 티끌눈물보람’, 곧 자신의 존재 전부를 그에게 내어 드릴 수 있으니.

   그리움은 분리에서 발생한다. 플라톤Platon에 따르면, 에로스는 분리된 존재가 분리 이전의 완전성을 희구하는 열정이다. ‘! 그립다는 분리되어 한없이 결여된 채로 있는 화자가 토로할 수밖에 없는 영탄이다. ‘내 혼잣마음 날 같이 아실 이, 분리와 결여 속에서 기대 · 회의 · 자문을 오가는 나를 채워 줄 존재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 남이라는 사실을 곧잘 망각하고, 그를 자신의 연장이나 확장으로 상상하거나 경험한다. 그러면서 그 환상에 작은 금이 갈 때마다 좌절하고 살갗이 벗겨지듯 아프다. 그러나 내가 끝없이 그를 욕망하듯이, 그가 나를 욕망하기를 바라는 일을 멈출 수 없다. 끝내 사랑하는 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을 그칠 수 없다.

   김영랑은 이러한 마음의 미묘한 움직임, 사랑의 현상학을 자신의 고유한 언어, 조직, 소리의 배치와 울림(운율)을 통해 독자에게 펼쳐놓는다. 그리움은 절실하고 옥돌에 불이달아오를 사랑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희미하고 내 혼잣마음사랑도 모르는 정체불명 상태이다. 그러나 김영랑은 언어로 포착하거나 그리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 듯한 이 미묘한 마음의 움직임을 언어의 구체적인 질감(물질성)과 조직을 통해 환기하려고 했을 터.


군말

   김영랑金永郞(1903-1950, 본명 김윤식金允植)내 마음을 아실 이는 시전문지 시문학詩文學(3, 1931. 10.)에 처음 실렸다. 이후 발간된 김영랑의 시집 영랑시집(시문학사, 1935)영랑시선(중앙문화협회, 1949)에서는 제목 대신 작품번호(’43‘/영랑시집, ’11/영랑시선)만 표시했다. 제목이 작품의 의미를 예단하거나 한정할 수 있는 여지를 미리 차단하고자 한 것이리라.

   그것을 굳이 음악에 비유한다면, 김영랑은 자신의 시가 표제악標題樂이 아닌 절대악絶對樂을 지향한다는 것을 독자에게 넌지시 일깨운 것일 수도 있겠다. 곧 그의 시가 관념(주제, )의 전달보다 언어의 물질성과 조직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에 집중한다는 것을. 영랑시집에 키츠Keats의 말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A thing of beauty is a joy for ever“)을 덧붙인 것도, 시가 언어예술이며, 예술의 궁극적 목표가 미의 추구라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시전문지 시문학1930년대 탈정치적인 서정시를 추구했던 시인들의 활동무대였다. 탈정치와 순수 서정의 추구는 당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의 정치적 경향성과 대립된다. 발간을 주도한 박용철朴龍喆과 더불어 김영랑, 정지용, 변영로, 이하윤, 정인보, 신석정 등이 시문학에 작품을 발표했다. 그 중에서 김영랑은 언어의 음악성을 두드러지게 하고 미묘하고 섬세한 정서를 언어로 조직하는 데 남다른 성과를 얻었다. 시문학19303월에 창간해 그해 5월에 2호를, 그리고 다음해 10월에 낸 3호를 마지막으로 발간했다.

   김영랑은 무용가 최승희와 교제를 했는데 부친의 반대로 끝내 혼인을 하지 못해 크게 상심했다고 한다. 김영랑은 휘문의숙 재학 중 고향인 전남 강진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하다가 체포되어 복역 중 대구복심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출옥하기도 했다. 광복 후 1948년 고향에서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19506·25전쟁 중 후퇴하는 북한 인민군의 유탄에 맞아 사망했다. 뛰어난 한 시인이 총탄에 맞아 최후를 맞다니! 민족상잔의 비극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 손병희 / 이육사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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